논문을 쓰는 이유

1.
언제부턴가 대학과 학문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데
SCI에 등재된 논문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국가에서 공모하는 모 연구과제의 신청 자격을 SCI 논문이
몇 편 이상인 교수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제는 논문을 쓸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특히, 자연언어처리 분야는 SCI에 등재된 논문지가 하나도 없으니
연구실적을 평가하시는 분들의 관대한 처분만을 기다릴 수밖에...
(이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논문지로 Computational Linguistics는
SCI가 아니라 SSCI에 등재되어 있다)

설사 SSCI에 등재된 것을 인정해 주더라도 Computational Linguistics는
연평균 논문수가 10여개 밖에 안되기 때문에 도움이 안된다.

어느날 갑자기 SCI 논문이 한 편도 없는 사람은 연구실을 떠나라고
할지도 모르니 시한부 인생처럼 언제든 미련없이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라도 해야 하나?

2.
연구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국제논문지에 논문을 몇 편 발표했는지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국제논문지가 국내논문지보다 우수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한국어 정보처리' 분야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국제논문지에 실린 논문이 인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국내논문지나 학술발표회 논문집을 가장 많이 참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국제논문지에 어떤 논문들이 발표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다만, 학생들이 학위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우수한 논문이란 학문발전에 도움이 되고 많은 연구자들이 참조하는
논문일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3.
공학분야에서는

  (1) 가장 게으른 사람이 '책'을 쓰고,
  (2) 게으른 사람은 '논문'을 쓰고,
  (3) 부지런한 사람이 '특허'를 내고,
  (4) 정말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연구를 했다고 하더라도
논문이나 저서 등 어떤 형태로든 발표가 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4.
SCI나 국제논문지 얘기가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며 지나쳤는데,
객관적인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라고 알려지면서 컴퓨터 분야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두하기 보다는 연구실적에 매달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SCI 논문이나
국제논문지가 개인의 연구능력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타당한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99년 5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