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패이에 얽힌 비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작된 더치패이는 이제 성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오히려 더치패이를 하지 않으면 약간의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물론, 뭔가 좋은 일이 있거나 용돈이 좀
넉넉한 친구가 술 한잔 사는 것은 부담없이 받아들이지만...
그런데 술 한잔 잘못 얻어먹었다가 인생의 진로가 바뀌는 법조인들이
있는 걸 보니 친구가 술을 사준다고 맛있게 먹을 일은 아닌가 보다.

더치패이가 시작되면서 논란이 많았었다. 특히, 선후배들이나 상사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선배나 상사는 아직도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민족의 오랜 문화적 특성인 끈끈한 정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적 특성이 변해가고 있음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예전에는 아랫사람들은 열심히 일만 하고 그 결과는 모두 웃사람들의
몫이었다. 대부분 아랫사람들의 존재는 무시되고 웃사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체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선배나 상사들은 열심히 일만
하고 그 보람을 찾지 못하며 후일만 기대하고 있는  아랫사람들에게
항상 뭔가를 베푸는게 당연시되었다. 회식이나 술을 한잔 하게 되면
선배나 상사가 값을 치르는게 관습이 되었다. 이처럼 한두 사람이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는 친구들 사이에도 전파되어 좀 여유가 있는
친구가 넉넉지 못한 친구에게 베푸는 '정'이 많은 사회를 낳게 된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뛰어나고 일을 아무리 잘 해도 상사에게 밉보이는
사람들은 고생만 하고 결국 아무 보람도 느끼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져 가는 불합리한 일들이 발생한다.
특히, 학연-지연 등에 의해 능력있는 사람들은 무시되고
상대적으로 끈끈한 정(?)과 인연에 따라 아랫사람들이 평가되는 현실은
정과 인연을 좇는 분위기를 팽배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능력있는 후배들은 선배들을 신뢰하지 못할 때 본인의
역량으로 극복하고자 하였고, 이는 업무가 전문화됨에 따라
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는 전문분야를 중심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직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한 조직일수록 선후배를 막론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평가받는 체제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조직의 힘이 개인의 능력에 우선하는 많은 분야에서는
기존의 관습이 지속되고 있지만, 산업체와 공학분야를 중심으로
개인의 능력이 조직의 전체 흐름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능력이
더욱 중요시되는 사회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상사나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적어지고 선배나 상사들은
후배나 아랫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더치패이'라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1999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