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할 수 있는 날을 세어 보면...

가끔 국내 교수의 연구업적(논문편수)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국내의 연구여건을 고려하면 조금 달리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1년 동안에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를 계산해 본다면 ...

정상적인 교육 의무를 수행하면서 연구 시간을 확보한다고 할 때,
1년 365일 중에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날수는 아래와 같다.

   1.  학기 중 (32주 중에서)  ----  32일

        1학기는 16주이므로 2학기까지 모두 32주이다.
        학기 중에는 강의, 강의준비, report검사, 학생 상담 등
        교육에 할당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주당 12시간(4과목)의 강의를 하는 맡았다고 가정할 때
        하루에 3시간씩 강의를 하고,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강의준비, report 검사, 학생 상담 등에 할당하면
        1주일에 4일은 강의에 전념해야 한다.
        즉, 학기 중에는 1주일에 하루씩 총 32일간 연구가 가능하다.

    2.  방학 중 (20주 중에서)  ---- 100일

        방학 중에는 강의가 없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된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20주*5일=100일을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기계적으로 계산된 위 결과에 의하면 1년 365일의 약 3분의 1인 132일
정도를 연구하는데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학기중 혹은 방학 중에 발생하는 여러가지 잡일들을 1년 단위로
계산해서 제외하여야 한다.

    1. 회의 : 12일
        교수회의 --- 학기 중 1시간/월*12월을 2일로 환산하고
                     방학중 학사협의회가 4일
        학과회의 --- 1학기당 5일씩 10일로 환산
    2. 학회, 세미나, workshop, 전시회 참가 : 10일
    3. 외부 연구소나 회사 방문 및 손님 접견 : 학기당 5일씩 10일
    4. 위원회 등 통상적인 교내/학과 행정 업무 : 학기당 7일씩 14일
    5. 입시 및 본고사 지원 업무 : 7일
    6. 입학식, 졸업식 등 교내외 각종 행사 : 5일
    7. 근로기준법에 의한 연-월차 휴가 : 17일(월차12일,연차5일)

1년 365일 중에서 79일은 행정적인 업무에 종사해야 하므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날수는 고작 132일-79일=53일이다.

이 수치를 공휴일을 포함한 날수로 환산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12개월 중에서 2개월 반에 해당한다.
그나마 학기 중에는 강의 도중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한 연구를 수행하기는 어렵다.

결론적으로, 한 교수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1년 동안에,
실제로는 약 2개월만에 직접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쓴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연구를 수행할 것인가?
우선, 전산학 분야에서 논문 1편을 쓰는 과정을 살펴 보자.

        관련있는 논문들을 survey하고,
        새로운 idea를 고안하며,
        이를 program으로 구현하여 실험한 후에,
        그 결과를 분석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겨우 논문 쓸 준비가 되고, 실험결과를 논문으로 기술하기
위해서는 또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아야 한다.
이러한 열악한 연구환경 속에서도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대학원생들의 도움으로 간접 연구를 수행한다.
    2. 연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강의준비 및 학생지도를 소홀히 한다.
    3. 연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오거나
       평일에도 밤늦게까지 연구를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논문을 쓰려면 대학원생의 도움이 필수적이거나,
연구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을 소홀히 하던지, 아니면 교수로서
품위를 지키고 격식을 갖추는 등의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여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어려운 여건하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시는
교수님들께 마음으로나마 후원을 보내는게 당연하지 않나요?

    1996년 12월 20일